[HOME] Diary   :    Mental Food   :    Pensees   :    Bible   :    Energy   :    Study note   :    Board    

 

|  달리의 초현실주의  |  Salbador DALI  |  Image Gallery  |

 

 

   달리의

초현실주의

   달리의 작품 세계를 현대 미술사조에 따라 도식적으로 끼워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1940년대 이후부터 화가 자신이 아방가드르 미술과는 거리를 취하고 있으며 베르미어, 미켈린젤로, 벨라스케스와 같은 친숙한 과거 거장들의 전통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회화적 개성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의 대표화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1939년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 그룹과 결별한 후에도 달리의 모든 작품은 초현실주의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초 현실주의

   1920년대 초에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앙드레 브르통을 선두로 한 파리 다다이즘 시인들의 유파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다주의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파괴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욕망에 대립하여, 초현실주의자들은 초현실주의를 전통적 예술의 표현 방법에 대한 대체 예술활동으로 규정지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모든 아방가드르 미술 활동에 있어 공통된 것이지만, 이 목적의 배후에는 새로운 사회 안에서의 새로운 사람에 대한 유토피아 사상이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밝혀낸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를 해방시킴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욕망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재였으며 자동기술법과 같은 표현방법을 통해 화면에 그것을 노출시키기 위한 과정은 인간의 의식적인 의도와 이성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1924년 브르통이 초현실주의의 첫 번째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이 그룹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

   달리는 1929년 초현실주의자들과 합류하였으나 1922년에 벌써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접하였고 적어도 1926년부터 그의 그림에서 꿈과 무의식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 달리는 곧 프랑수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재미있는 주제들을 심오하게 탐구하였습니다.  소재를 꿈의 세계를 전달하는 송신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자동기술법과는 반대로 다라리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유효한 꿈을 지속시켜 주는 정신착란을 객관화하고 체계화 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것을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paranoiac-critical method)"이라 부르고 있으며 1930년대 많은 글들을 통해서 이를 발전시켰습니다.  브르통은 몇 년 뒤에 이같이 말하였습니다.  "1923~1924년의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과 1924년 미로의 작품 이래로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계시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얼마동안 달리는 정복자 중의 정복자였다."

   1930년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정신착란 현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이성적 인식의 즉홍적인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편집증을 마치 "자신의 거만한 찬양"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예술가가 예술적 재료로서 그 자신의 강박관념과 욕구를 조직하기 위하여 그 강박관념과 욕구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체계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종합은 달리의 회화작품에 있어서 진정한 정수이며 정신착란의 주제들과 결합하여 정통적인 그의 회화기법, 즉 정밀한 소묘나 완벽한 원근법 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달리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이 현실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하여 그것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데 반하여 초현실주의자의 자동기술법은 다른 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초현실주의자의 주요한 목적이 기존의 현실을 힘과 억압의 도구로서 불신하는 것이라면 달리의 작품만큼 진정한 초현실주의로 인정할 수 있는 작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달리에 의해 독자적으로 그려진 기이한 인물들의 저변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의 뛰어난 지성과 광범위한 교양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항상 그림을 지식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생각한 한 인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그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이해하게 되며 1932년 런던에서 만나 알게 된 프로이드를 감동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초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역설적인 이미지들

   우리시대 예술에 달리가 이룩한 큰 공헌은 조형 언어나 재현에 있어서의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이미지 창조에 있습니다.  1926년부터 입체주의를 포기한 달리는 홀로 전통회화를 무기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존은 그의 화업 중반 이후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 이후에 한결 강해지고 있습니다.

   달리의 이미지들은 역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불안은 모순을 통하여 도출합니다.  그러므로 달리의 이중 이미지나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에 대한 취향은 어떻게 그것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읽혀질 수 있습니다.  그의 상징들의 기원도 그의 삶 자체에서, 즉 카다케스와 크레우스 케이프의 암석들, 암푸르단의 평원, 어머니의 죽음으로 얼룩진 유년기, 우상숭배에 가까운 갈라에 대한 헌신, 편집광적 기질 등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나(Ego)와 기억

   달리의 자기 중심성은 사치스러운 변장일 뿐만 아니라 그의 편집광적 정신 착란의 중요한 토대였으며 쉼없이 기억의 샘물을 들어올린 결과이자 자신의 작품에 실질적인 비평거리들을 제공하고자 했던 바람이었습니다.  꿈과 강박관념은 개인적인 것이고, 원칙상으로는 양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달리는 이러한 것들에 우주적인 가치를 부여했으며, 전통적인 조형 언어가 결합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들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열쇠는 그의 모든 작품에 나타난 호소력 있는 주제들로, 꿈을 통하여 사물들이 부드럽게 재현되며, 식품은 죽음과 연관된 은유로 표현되거나, 카탈루냐의 시인이자 신비주의자인 라이문도 루이오의 기억의 수레비퀴로 표현되거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죽음과 욕망을 그린 모호한 이미지들이 표출됩니다.

   우리 시대의 예술과 문화에 있어서 달리의 상상력의 반향은 팝 아트에서부터 영화와 문학에 이르기까지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달리는 현대 화가들 중에서 일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화가일 것입니다.  비록 화가의 인물 주변에 집중된 논쟁일지라도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그에게 거대한 회고전을 개최해 주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달리는 우리 세기 위대한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서의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  달리의 초현실주의  |  Salbador DALI  |  Image Gallery  |

 

 

 
Diary   :    Mental Food   :    Pensees   :    Bible   :    Energy   :    Study note   :    Board

Copyright© 1998 All rights reserved by Pock. young-keun (Facebook)